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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팀랩 월드 서울 Team Lab World Seoul

팀랩 월드 Team Lab World Seoul

디지털 아트로 만든 테마파크 그리고 감각의 핵심

일본의 디지털 아트 그룹인 팀랩 TeamLab이 2016년 8월 5일 서울에 상설전시관을 열었습니다. 팀랩월드 TeamLab World라는 이름으로 잠실 롯데월드에서 전시 중입니다. 팀랩의 작품을 서울에서 직접 볼 수 있다니 부푼 기대를 안고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팀랩 월드 서울 2016

팀랩 월드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게이트 양 옆으로 고래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이 보라빛 고래는 앞으로 전시장 내부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입니다. 왠지 모르게 고래는 단순히 동물 이상의 신비감을 주는 상징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스케일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와 깊은 바다 속에서 살며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여유로운 모습 때문일까요. 어두운 공간의 벽을 헤엄치는 고래들을 보니 마치 심해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팀랩 월드 입구

팀랩 월드의 로고가 그려진 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팀랩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팀랩은 2001년에 결성된 디지털 아트 그룹으로, 현대 디지털 기반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예술가가 모여 결성한 아티스트 그룹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울트라 테크놀로지스트(Ultra- technologists)’라 부르며 예술, 과학, 기술, 창작의 균형 잡힌 조화를 추구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룬 것 같습니다. 작품들은 기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지만 감상하면서 기술을 의식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은 잠시 잊어버린 채 아름답고 환상적인 비주얼에 빠져들어 한참동안 공간 속을 휘젓고 다니게 되지요.

팀랩. 2001년 결성된 디지털 아트 그룹.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입니다. 어두운 방 전체를 꽉 채운 꽃밭의 물결에 잠시 넋을 잃은 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방에서는 3가지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꽃과 사람, 통제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1년에 1년을’입니다. 둘째는 한쪽 벽면에 걸린 스크린에 보이는 ‘증식하는 생명II, 1년에 1년을, 다크’입니다. 셋째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스크린 안팎으로 넘나드는 ‘경계없는 군집(무리를 지어 나는 나비)’입니다.

꽃과 사람, 통제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1년에 1년을

방안을 걸어다니다가 한 곳에 머무르게 되면 발 밑에서 꽃밭이 피어오릅니다. 한참 피어오르던 꽃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흩어져 사라지고요. 벽을 만져도 꽃들이 반응해서 피어오르다가 시들어 사라집니다. 마치 모네의 그림 속에 직접 들어가서 거닐어보면 틀림없이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와 제일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인데다가 매우 몰입감이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앞으로 살펴볼 작품들에 더욱 기대감을 갖게 되죠.

꽃과 사람, 통제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1년에 1년을

자세히 보면 벽에 걸린 스크린에 보이는 작품은 조금 성격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와 꽃잎, 나뭇잎들이 관객에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자라났다가 다시 사라지고 다시 자라남을 반복합니다. ‘꽃과 사람'은 서양의 감성에 좀더 가깝다면, ‘증식하는 생명'은 좀더 동양의 감성,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전통회화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수천개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렌더링되면서도 아주 매끄럽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기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증식하는 생명 II- 1년에 1년을, 다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작은 디테일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높은 완성도를 구현한 것을 볼 수 있네요. ‘경계없는 군집'을 이루는 스크린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서 날다가도 어느 순간 스크린 밖으로 나가서 날다가 사라집니다. 프로젝션 맵핑으로 방 전체를 비추는 꽃들과 스크린에 보이는 나비들은 엄연히 다른 프로그램일텐데 전혀 어색함이나 끊김을 느낄 수 없이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닙니다.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구현하면서도 전혀 기술을 의식하지 않게 하는 예술성이라는 의도를 바로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경계없는 군집(무리를 지어 나는 나비)

이 3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방을 거닐면서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이었습니다. 모네는 지베르니 정원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인상주의 화풍이 주는 ‘인상'은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을 반영합니다. 같은 정원, 같은 연못이라도 그날의 햇빛에 따라, 화가의 기분에 따라, 다른 인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렇기에 같은 장소에서 그려도 결코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팀랩의 ‘꽃과 사람'에서도 이미지는 결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법이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그때 그곳의 상태를 보여줄 뿐입니다.

모네의 그림에서 하나하나의 꽃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몇번의 붓질로 표현되어 정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팀랩의 ‘꽃과 사람'을 비롯한 작품에서는 가까이 보면 꽃잎 하나하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멀리 보면 꽃들이 뭉쳐 나타나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순간의 상태만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능한 표현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네가 포착한 찰나의 순간이 남긴 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찰나로 인해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클로드 모네 - 지베르니 정원의 사잇길, 수련, 아이리스가 있는 정원

두번째로 만나볼 작품은 바다 속 풍경으로 옮겨갑니다. ‘스케치 아쿠아리움’이라는 작품입니다. 두 개의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아쿠아리움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종이와 크레용이 준비되어있습니다. 거북이, 문어, 해마, 상어 등 여러 가지 바다생물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골라서 원하는 색을 칠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색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있네요. 종이에 색칠을 한 뒤 스크린 왼쪽에 놓인 스캐너에 바로 스캔을 하면 몇 초 만에 스크린 속으로 내가 그린 물고기가 들어와 헤엄을 치기 시작합니다.

스케치 아쿠아리움

세상에 단 한 마리밖에 없는 문어들이 보이네요. 사람 얼굴을 가진 문어도 있고,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 라이언의 얼굴을 가진 문어도 있습니다. 점박이 무늬 문어도 있고 체크 무늬 오징어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렸다면 나오기 힘들 각양각색의 아이디어들이 바다 한가득 헤엄치고 있네요. 관객 참여형 작품은 작가가 만든 부분과 관객이 만든 부분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스케치 아쿠아리움은 이 부분의 균형을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칠공부를 하듯 크레용을 들고 물고기를 그리는 것도 재미있고, 내가 그린 물고기가 살아움직이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린 물고기들을 보며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참 유쾌한 작품입니다.

스케치 아쿠아리움

바로 옆으로 이동하면 세번째 작품이 보입니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아직 신들이 곳곳에 머물러 있을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해와 달, 산과 나무, 말과 코끼리가 움직이는 사이로 상형문자들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상형문자를 손으로 건드리면 문자가 해당 이미지로 바뀝니다. 산 모양의 상형문자를 건드리면 진짜 산 모양이 나타납니다. 산도, 나무도, 강도, 불도, 관객이 직접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들이 우연히 겹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텍스트로 쓰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로 쓰인 이야기이고, 정해진 결말도 없고 치밀한 복선도 없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내 맘대로식 이야기입니다. 뭐 어떻습니까.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가 모두 원본인 걸요.

아직 신들이 곳곳에 머물러 있을 무렵의 이야기

계단을 내려오면 네번째 작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라이트볼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을 굴려서 다른 공에 부딪치면 색이 바뀌고 공들이 서로 연달아 부딪치면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듯 공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 사이로 뛰어다니며 공을 굴려대기 바쁘고, 연인들은 공을 하트 모양으로 배치해서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분위기입니다.

라이트볼 오케스트라

맞은 편에 ‘그래피티 네이쳐’라는 다섯번째 작품이 보입니다. 관객이 그린 악어, 개구리 등의 동물이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관객의 동선을 따라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악어가 개구리를 잡아먹기도 하고 동물들이 이동한 궤적이 긴 흔적을 남깁니다. 벽 위를 헤엄치던 고래가 갑자기 발 밑으로 내려와 헤엄치기도 하고요. ‘꽃과 사람'의 관객에게 반응하는 꽃들과 ‘스케치 아쿠아리움'의 화면 속에 살아움직이는 종이 동물들, 그리고 입구에서 본 고래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종합편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피티 네이쳐

옆 칸으로 이동하면 좀더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여섯번째 작품은 ‘꼬마요정이 사는 테이블’이라는 아주 귀여운 인터랙션 작품입니다. 테이블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있는 꼬마요정을 테이블 위의 오브제나 손을 이용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도 오고 해도 비추고 별 폭죽이 터지기도 합니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입니다. 꼬마요정들과 더 놀고 싶지만, 아직 볼 것이 많이 남아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꼬마요정이 사는 테이블

바로 옆에는 일곱번째 작품으로 ‘이어보자! 나무블록 열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각형의 긴 테이블 위에 놓인 큐브를 움직이면 큐브 사이로 길이 생기고 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철도에는 기차가, 수로에는 배가 움직입니다. 내가 만든 도로를 다른 사람이 큐브를 움직여 없앨 수도 있고 더 길게 늘릴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협동을 통해 마을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이어보자! 나무블록 열차

옆 칸으로 이동하면 훨씬 더 큰 규모의 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덟번째 작품인 ‘스케치 타운’입니다. 여기에서도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와 크레용을 이용해서 나만의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등의 교통수단을 직접 그려서 만들 수 있습니다. 물고기를 그렸던 ‘스케치 아쿠아리움'과 원리는 같지만 여기에서는 종이에 그린 2D 형태의 그림이 스캔을 하면 바로 3D로 변환되어 실제로 앞면 뒷면 옆면이 모두 보이게 되는 것이 달라졌네요. 서울전시관인 만큼 도시의 테마를 경복궁과 세종대왕상 같은 서울의 상징물을 사용하여 장소에 맞도록 세심하게 신경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케치 타운

맞은편에는 아홉번째 작품으로 ‘만들어보자! 징검다리 놀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은 냇물에 징검다리가 놓여있습니다. 옆에 놓인 컴퓨터 스크린에서 내가 원하는 징검다리를 놓으면 냇물에 징검다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모든 징검다리를 다 밟으면 내가 만들었던 축하 사인이 나타나며 축하를 해줍니다. 발을 헛디뎌도 물에 빠질 염려가 없는 아주 안전한 징검다리입니다.

만들어보자! 징검다리 놀이

지금까지 살펴본 아홉개의 작품들에 조금 성격이 다른 부류가 섞여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시장에서 처음 관객을 맞이한 ‘꽃과 사람'을 비롯한 3개의 작품이 있는 방 이후에는 대부분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고 개입하는 작품들입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놀이 같습니다. 전시 소개 페이지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테마는 ‘Learn & Play! Future Park’ 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놀이형 작품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테마는 ‘Dance! Art Museum’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좀더 예술적인 주제와 표현을 보여주며 전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합니다. 곧 만나볼 두 개의 멋진 작품들입니다.

이제 옆 칸으로 이동하면 놀라운 작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년해도권 [상영시간: 100년]'이라는 열번째 작품입니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예측치에 근거하여 2009년부터 2109년까지 100년 동안 상영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7년간 상영 중이라는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관객들이 100년 동안 작품을 전부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래에는 평균수명이 500살쯤 되는 날이 온다해도 누군가 100년 동안 계속 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리 만무하죠. 그래서 이 100년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압축한 버전을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로 만들어서 상영합니다. 압축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꽤 상영시간이 길어서 바닥에 놓인 방석 위에 편안히 앉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꽤 넓은 전시관을 돌아다니면서 지친 다리를 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

삼면을 채운 바다가 끊임없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갑니다. 중간중간 섬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해수면이 조금씩 상승하는 것은 미세하게 달라지는 수평선의 위치를 보면서 알 수도 있지만, 섬들이 물에 잠기는 정도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섬이 보이지만 점점 섬이 작아지고 나중에는 섬 꼭대기와 나뭇가지만 보이다가 결국 파도 속으로 사라집니다. 파도의 높이는 이미 ‘백년해도권'을 보는 관객의 키 높이를 넘었고, 파도는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다가 점점 붉게 일렁이며 모든 육지를 집어삼킵니다.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

이 모습이 실제로 100년 뒤 지구의 모습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측치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데이터에 근거해 추측한 것일 뿐입니다. 미래의 데이터는 현재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요. ‘백년해도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을 한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통계데이터를 분석해 도출한 예측치를 활용한 것도 아니고 해수면을 실제 해수면 상승률에 대응하도록 만든 것도 아닙니다. 바로 ‘100년 간의 상영시간’입니다. 백 년 후에도 누군가가 이 작품을 볼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나아가 백 년 후에는 아무도 이 작품을 볼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시간의 스케일 말입니다. 예술가뿐 아니라 누구든 지금 자신의 행동이 백 년 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하루에 할 일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년해도권 애니메이션 디오라마

마지막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대를 품은 열한번째 작품 ‘크리스탈 유니버스’가 대미를 장식합니다. 벽, 천정, 바닥 할 것 없이 모든 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LED 전구가 가득 늘어서 있습니다. 사방의 거울에 비친 LED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방은 마치 무한한 우주공간처럼 보입니다. 방 자체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통로가 중간에 꺾여 있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구조이기에 이 공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어서 실제보다 매우 크게 느껴집니다. 어차피 실제의 공간이 아닌 지각된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것이 목적이기에 방의 크기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크리스탈 유니버스

거울의 방 안을 가득 채운 전구들은 계속 점멸하고 색이 바뀌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경험을 만들어줍니다. 상하좌우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기에 방 안에 오래 머무르면 묘하게 공간감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몰입감 있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경험을 다루는 팀랩의 작품세계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 방에서 ‘꽃과 사람'을 배치하고, 가장 마지막 방에서 ‘크리스탈 유니버스'를 배치한 것은 팀랩의 작품세계를 관객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도록 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적 배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처음에 본 것과 가장 나중에 본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니까요.

크리스탈 유니버스

이 작품이 전시의 마지막 작품이기에 이 공간을 나가면 바로 환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작품세계 뿐만 아니라 실제 전시장 밖으로 말이죠. 일단 밖으로 나가면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LED전구들을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받는 QR코드가 이 방을 나간 다음에 안내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미리 앱을 설치한 다음 방으로 들어간다면, 방 한가운데에서 스마트폰으로 LED전구들을 직접 조절하면서 실시간으로 패턴이 변화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말이죠. 아직 전시를 보러가지 않은 분이라면 미리 앱을 다운로드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탈 유니버스를 만드는 방법

팀랩 월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팀랩 월드]http://seoul.teamlabworld.com/en/에서, 팀랩에 대한 좀더 풍부한 정보는 [팀랩] http://www.team-lab.net/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팀랩 월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팀랩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테마파크의 컨셉으로 구성된 팀랩 월드이다보니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팀랩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전시들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가타 고린-홍백매도병풍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기술적인 작품 속에서도 일관성있게 느껴지는 감성은 ‘일본 문화의 감성'입니다. ‘증식하는 생명 II’이나 ‘백년해도권'에서 느껴지는 일본 병풍 회화의 느낌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전통과 현대, 기술과 감성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통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감각의 핵심만을 뽑아내어 현대적 기술과 완벽히 융합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전통 문화이어서도 아니고 또는 그것이 현대의 기술로 구현되어서도 아니라, 그 ‘감각의 핵심'을 읽어내는 능력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문화적 감각의 핵심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아티스트들이 조금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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